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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찌기 싫다면 장내 미생물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자

작성자 달려라
작성일 19-01-11 07:25 | 조회 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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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장내 미생물과 비만

항생제는 장내 미생물도 변화시켜
바뀐 미생물이 비만 원인 되기도
장내 미생물은 식이섬유 소화해
우리 건강에 이로운 지방산 만들어

장속 생태계 균형으로 비만 예방
미생물 좋아하는 재료는 식이섬유
매주 30가지 식물 섭취하면 균형
2주만 식단 바꿔도 금방 변화해

장내 미생물이 비만의 주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학계에 널리 알려진 한 실험에서는, 비만 상태 쌍둥이의 대변을 대장에 이식한 쥐는 비만이 된 반면 정상 체중 쌍둥이의 대변을 받은 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 상태가 장내 미생물을 통해 쥐에게 전달됨을 보여준 실험이다. 사진은 실험동물인 비만 모델 생쥐(왼쪽)와 정상 생쥐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장내 미생물이 비만의 주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학계에 널리 알려진 한 실험에서는, 비만 상태 쌍둥이의 대변을 대장에 이식한 쥐는 비만이 된 반면 정상 체중 쌍둥이의 대변을 받은 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 상태가 장내 미생물을 통해 쥐에게 전달됨을 보여준 실험이다. 사진은 실험동물인 비만 모델 생쥐(왼쪽)와 정상 생쥐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눈에 겨우 보일 정도로 작은 진딧물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해충이다. 집 안의 화초부터 농작물까지, 진딧물이 끼치는 피해는 상당하다. 그런데 진딧물은 오로지 식물의 수액만 빨아 먹고 사는 편식을 한다. 식물의 수액에는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풍부하지만 필수 아미노산은 부족한데도 어떻게 진딧물은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잘 사는 것일까? 어디서 누군가 이 부족한 아미노산을 공급해주는 것은 아닐까?

답의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렸다. 바로 항생제를 먹이자 진딧물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항생제는 동물에는 해가 없고 동물의 몸속 세균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마법의 약인데, 항생제가 곤충을 죽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예상하셨겠지만, 몸속에 있는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는 세균이 죽었기 때문에 공생관계인 진딧물도 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곧 이 세균은 이 분야의 개척자인 파울 부흐너 박사의 이름을 따 ‘부크네라’라고 불렸다.

진딧물 한 마리의 몸에는 약 100만마리의 부크네라가 있고 이들의 주된 구실은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을 만들어 진딧물에게 바치는 것이다. 진딧물은 그 대가로 부크네라에게 의식주 전부를 제공한다. 완벽한 공생관계이다. 여기에 착안한 과학자들이 부크네라를 죽이는 농약을 개발 중이다. 진딧물을 죽이는 현재의 농약은 같은 동물인 인간에게도 해로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부크네라를 죽이는 농약이 개발되면 사람에게 해가 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미생물과 공생한다. 그래서 항생제가 세균만 죽이고 사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쉽게 단정하면 안 된다.

항생제 먹인 가축이 살찌는 이유

지난 50년 넘게 세계 농부들은 가축에게 저용량의 항생제를 사료에 넣어 먹였다. 항생제는 세균에 의한 감염증을 치료하는 데 쓰는 약이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적은 양의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먹인 소와 돼지는 안 먹인 동물에 견줘 15%까지 몸무게가 늘어났다. 즉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이니, 전세계에서 이런 방식의 사육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항생제 내성 발생을 막으려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국가들에서는 치료 목적이 아니라면 사료에 항생제를 첨가하는 방식을 금지하고 있다.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먹이면 왜 가축은 살찌는 것일까? 그 정확한 이유는 최근까지도 잘 몰랐다.

마틴 블레이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생쥐를 모델로 이 문제를 설명하려고 했다. 생쥐의 대장에는 인간의 대장처럼 많은 미생물이 있어서 장내 미생물 연구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실험동물이다. 블레이저 교수는 임신한 생쥐에게 적은 양의 페니실린(항생제의 일종)을 먹였고, 태어난 새끼에게도 계속 먹였다. 가축의 사료에 소량의 항생제를 넣어왔던 관행을 생쥐에게 적용한 것이다.

가축처럼 소량의 항생제를 꾸준히 먹은 생쥐는 항생제를 먹지 않은 생쥐보다 살이 많이 찌는 비만이 발생했다. 정상적인 쥐는 약 3g의 지방을 가지고 있는데, 항생제를 먹은 쥐는 같은 양의 사료를 먹어도 5g의 지방을 가지게 되었고, 항생제에다가 특별한 고지방의 사료를 먹은 생쥐는 정말로 뚱뚱한 10g의 지방을 가진 쥐가 된 것이다. 바로 항생제가 생쥐에게 비만을 유도한 것이다. 단지 살만 찐 것이 아니다. 추가로 당뇨병의 특징인 인슐린 저항성이 생겼고 간에서 해독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의 기능이 저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었다면 분명히 병원에서 대사질환 진단을 받을 만한 상황이었다. 단지 저용량의 항생제를 먹은 것뿐인데.

여러 나라에서 시행된 연구에 따르면, 유아기에 항생제를 먹으면 나중에 소아 비만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콜로라도대 의대의 프랭크 스콧 교수팀이 2만명의 아이를 추적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생후 2년 이전에 항생제 처방을 받은 아이는 그 횟수가 많을수록 나중에 소아 비만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컸다. 뉴욕대의 블레이저 교수팀은 이 부분도 생쥐를 모델로 해서 검증해보려고 했다. 연구팀은 새로 태어난 생쥐 몇마리에게 항생제를 투약하다가 젖을 뗀 뒤에는 투약을 중지했다. 그랬더니 비록 항생제를 중단해도 나중에 다 큰 생쥐에게 여전히 비만이 유도됨을 알게 됐다. 앞의 콜로라도대 연구팀의 역학연구와 같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어린 쥐의 몸에 생긴 미생물의 변화가 결국 어른이 된 뒤까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항생제는 무차별적으로 장내 세균을 죽인다. 물론 이때 죽은 세균은 다른 세균으로 대체되지만 이 과정에서 수백종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 즉 마이크로바이옴이 크게 바뀌게 된다. 그 결과 생쥐는 살이 찔 가능성이 커진다. 가축과 생쥐에게 모두 이런 연관 관계가 있다면 사람은 어떨까?

장내 미생물이 주는 선물, 짧은사슬지방산

대부분 대사질환처럼 비만도 자신이 타고난 유전자, 그리고 식이나 운동 같은 환경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 의대 제프리 고든 교수는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연구를 계획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완전히 같아서 최소한 사람의 유전학적인 차이에서 기인한 실험의 오차를 배제할 수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일란성 쌍둥이인데 한 사람은 몸무게가 정상이고 다른 한 쌍둥이는 비만인 경우를 찾을 수 있다.

고든 교수는 이런 쌍둥이 네쌍한테서 대변을 기증받아, 역시 쌍둥이이면서 무균 상태에서 키운 생쥐들에게 이식했다. 말이 이식이지 생쥐가 대변을 잘 먹기 때문에 실제로는 간단히 먹이면 된다. 결과는 놀라웠다. 똑같은 사료를 먹었는데도 정상 체중인 쌍둥이의 미생물을 대장에 가진 쥐는 정상 체중을 유지했고, 반대로 비만인 쌍둥이의 미생물을 가진 쥐는 체중이 늘어 비만이 됐다. 사람에게서 보인 체중 차이가 미생물을 통해 쥐에게 그대로 이전된 것이다. 과연 두 마이크로바이옴은 어떤 차이가 있어 비만을 유도한 것일까?

이 연구에서 생쥐에게 먹인 사료에는 다량의 식이섬유가 들어 있었다. 식이섬유는 사람이나 쥐 같은 동물은 거의 소화할 수 없다. 그러니 위나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흘러가서 그곳에 사는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리고 식이섬유를 소화한 미생물은 ‘짧은사슬지방산’이라는 생체물질을 많이 만들어낸다. 짧은사슬지방산은 우리 장에서 흡수되어 숙주인 우리에게 추가적인 에너지원이 된다.

풍족한 음식을 먹어 섭취 열량이 과하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사건이다.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던 인류사의 대부분 시기에 미생물에 의한 이런 추가적인 열량 공급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만이 들불처럼 번지는 요즘, 추가 열량은 오히려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추가 열량으로 쓰이는 이 지방산이 비만 생쥐에게서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정상 체중의 생쥐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지방산이 만들어지는 것을 연구팀은 확인했다.

짧은사슬지방산의 구실은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장에서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이 물질은 가히 기적의 약이다. 우리 장을 튼튼하게 보호하며, 엉뚱하게 우리 몸을 공격하지 않도록 면역계를 안정화하고, 지방의 축적을 막아주며, 포만감을 느끼는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서 더 많이 먹지 않도록 도와준다. 정상 체중 쌍둥이의 대장에는 바로 이 짧은사슬지방산을 만드는 세균을 중심으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비만인 쌍둥이는 반대의 경우이고.

내 몸 안 미생물의 숲을 가꾸자

생쥐를 이용한 여러 연구에서 고기, 가공식, 정제된 탄수화물 위주의 서구화된 식단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대사 질환이 발생함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서는 어떨까?

필자가 2주 동안 식이섬유 위주의 식단을 유지했더니, 박테로이데스는 크게 줄고 대신 프로보텔라가 크게 늘었다. 프로보텔라는 식이섬유 위주의 음식을 먹으면 쉽게 증가하는 좋은 세균이다. 장내 미생물의 종 수가 늘어났으며 다양성 지수도 향상되었다.
필자가 2주 동안 식이섬유 위주의 식단을 유지했더니, 박테로이데스는 크게 줄고 대신 프로보텔라가 크게 늘었다. 프로보텔라는 식이섬유 위주의 음식을 먹으면 쉽게 증가하는 좋은 세균이다. 장내 미생물의 종 수가 늘어났으며 다양성 지수도 향상되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연구팀은 서구화된 식단의 본고장인 미국에 이민 오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연구팀이 선택한 사람은 남아시아 소수 민족인 카렌족이다. 이 부족은 비교적 채식 위주, 즉 서구화된 식단에 반대되는 ‘아시아’ 스타일의 건강한 식생활을 한다. 연구팀은 카렌족 이민자 19명의 장내 미생물에 생기는 변화를 미국에 도착한 뒤 9개월 동안 관찰했다. 미국에 처음 온 이민자들이 먹는 음식은 아무래도 간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 같은 서구화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연구팀은 9개월 동안 이민자들의 장 안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남을 알게 되었다. 먼저 미국에 체류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은 점차 감소하고 세균의 종류도 바뀌어갔다. 특히 ‘프레보텔라’라고 불리는 세균 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 세균은 지금도 수렵 채집 방식으로 사는 아프리카나 아마존 원주민들이 많이 가지고 있으며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나라 사람들의 장에서 많이 발견된다. 프레보텔라가 줄어든 자리는 ‘박테로이데스’라는 세균으로 채워졌다. 식이섬유를 잘 분해하는 프레보텔라가 점차 서구화된 식단에 특화된 박테로이데스로 대체된 것이다.

필자의 연구팀이 시민과학 프로젝트로 조사한 한국인 데이터를 보면, 건강한 성인도 프레보텔라를 주로 가진 유형과 박테로이데스를 주로 가진 유형으로 크게 나뉜다. 올해 덴마크의 코펜하겐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프레보텔라가 박테로이데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했을 때 살이 잘 빠진다고 한다. 이 두 세균의 상대적인 비율이 평생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상당히 자주 내 자신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조사하는 편인데, 본래 박테로이데스가 많은 유형이었다가 식이섬유 위주 식단의 도움으로 단 2주 만에 프레보텔라가 많은 유형으로 바뀌는 때도 있었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빠르게 반응한다. 그래서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미생물 숲’을 가꾸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

그동안 비만의 원인으로 열량이 높은 식생활, 운동 부족, 그리고 유전적인 요인이 많이 거론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연구의 메시지는 하나다. 장내 미생물도 비만의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체중이 늘고 비만에 이를 수 있다. 반대로 균형 잡힌 마이크로바이옴을 유지한다면 비만뿐 아니라 다양한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마이크로바이옴을 유지하기 위해 항생제 남용을 피하고, 식단은 여러분 위주가 아닌 미생물 위주로 바꾸길 권한다.

미생물을 위한 식단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식이섬유이다. 현미로 만든 비빔밥, 각종 나물 같은 전통적인 한식에는 이 식이섬유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1만 명 이상이 참여한 미국의 시민과학 프로젝트의 결론은 매주 30가지 이상의 식물을 섭취한 사람이 가장 균형 잡힌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살을 빼고 싶다면, 오늘 몇가지 식물을 먹었는지 한번 세어보면서 메뉴를 정하는 건 어떨지?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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