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의 울림, 반올림은 무엇이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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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사업장의 건강과 인권 소홀히한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현주소
2014년 열린 추모행사에서 반올림 회원들이 황유미씨 등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얼굴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07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23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유미씨의 죽음이 반도체 사업장 내 작업환경과 연관돼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같은 해 11월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가 발족한다. 반도체·액정표시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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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장 내 직업병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투쟁하는 비영리단체의 이름이자 오늘날 이 문제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의 시작이다.
2018년 7월 24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조정위원회가 향후 제시할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향후 중재안이 확정돼 양측이 이를 최종 수용하기까지는 여러 과제가 남아있지만 반올림 문제가 11년 만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 11년간 반올림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기본적으로는 산업재해 문제지만 동시에 ‘정보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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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를 일으켜 세운 빛나는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삼성공화국’으로 상징되는 재벌의 탐욕과 이기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반도체 신화의 숨은 공신 ‘오퍼레이터’
반도체 직업병 문제로 시작된 반올림은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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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등 다른 전자산업의 직업병 문제까지 포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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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우 작동원리가 사실상 반도체와 같고, 제조공정도 반도체와 유사해 업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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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넓은 범위에서는 반도체산업의 한 범주로 보기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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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은 191억3000만 달러로 역대 2위의 성적을 냈다. 이 중 반도체 수출이 112억5000만 달러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디스플레이 수출이 21억6000만 달러로 뒤를 이었다. 올 상반기 국가 전체 무역수지는 325억 달러 흑자, 같은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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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무역수지는 552억 흑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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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빼면 대한민국은 망한다.
반도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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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나라를 먹여 살리는 동안 묵묵히 생산현장에서 땀을 흘려온 노동자들이 있었다. 생산공정에서 각종 자동화 기계들의 운영을 담당하고 생산품의 검사업무까지 수행하는 이 노동자들의 이름이 다름아닌 ‘오퍼레이터’다.
반도체 사업장이라고 하면 흔히 깨끗한 ‘클린룸’에서 새하얀 방진복을 입고 근무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조하는 과정에는 많은 화학물질과 약품이 사용된다. 반도체의 기본 소재인 실리콘(규소)이 부도체인 탓에 이를 반도체의 특성을 갖도록 가공하고, 가공된 웨이퍼에 나노미터 단위의 회로도를 그려넣어 집적된 하나의 칩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함 그 자체다. 웨이퍼를 제대로 가공하는 데만 확산, 포토, 식각, 증착 등 6단계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은 대부분 자동화된 기계가 해도 이 기계를 운영하는 건 오퍼레이터들이다. 단순한 업무처럼 보여도 복잡한 제조공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고도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일이다. 영화 <탐욕의 제국>에 등장하는 고 황유미씨의 생전 노트에도 복잡한 화학물질 용어와 수식이 가득 적혀 있는 게 확인된다. 워낙 많은 화학물질과 약품이 사용되다 보니 늘상 독성물질에 노출될 위험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오퍼레이터들의 몫이다. 그리고 오퍼레이터들 대부분이 20~40대 젊은 여성들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통상 클린룸의 기계 관리자(메인터넌스)는 남성들이, 오퍼레이터들은 여성들이 맡는 게 관행처럼 돼왔다”며 “오퍼레이터 업무가 세심하고 꼼꼼함이 필요한 작업이라 젊은 여성들이 반도체산업의 발전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도 삼성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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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건설에 일조한 오퍼레이터들이 2000년대 들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백혈병을, 어떤 이는 뇌종양을 앓았다. 반도체 공정 중 수시로 화학물질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는 증언이 잇따르면서 반도체 사업장 내 유해환경 문제가 부각됐다.
하지만 국가는 쓰러진 오퍼레이터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고 황유미씨도 처음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냈다가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병을 얻은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산재신청을 냈지만 공단은 번번이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다”며 거절했다. 고 황유미씨가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아낸 다음에야 산재인정의 물꼬가 트였다. 이때까지도 정부는 반올림 사태 개입에 소극적이었다. 고용노동부가 반도체 사업장 종합점검에 나선 것도 2013년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사업장 내 작업환경이 위험하다는 걸 국가는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1991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반도체산업에 사용되는 유독성 위험물질의 재해 방지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의 결론을 보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질의 유해성을 검토해야 하며 작업장 내 환경측정 등 작업자의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1991년은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3위에 등극하며 국내 반도체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할 때다. 이때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가 반도체 사업장을 점검하고 각종 안전대책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연구원 관계자는 “보고서가 나오면 산업안전대책 및 정책 마련에 활용하기 위해 노동부 등 정부 부처와 기업, 학계 등에 제공된다”며 “해당 보고서가 이후에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을 외면한 건 고용주인 삼성그룹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지난해에만 반도체로 3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린 반도체산업의 최대 수혜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소 임원들에게 “삼성의 경영철학을 숙지하라”며 나눠준 소책자인 <지행33훈>을 보면 제22훈으로 ‘작업현장은 안전이 최우선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회장은 반올림 문제를 작업현장의 안전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일까. 반올림 문제로 여론이 들끓고 피해자들이 사망해갔지만 삼성의 첫 몇 년간 대응방식은 부인 내지는 무대용이었다.
삼성측이 반올림에 먼저 대화를 요청해온 건 사태가 불거진 지 5년이 지난 2012년 말쯤이었다. 조정위의 중재를 받아들이기로 한 지금 이 순간도 삼성은 반도체 공정과 직업병 발병 간 인과관계 자체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면서도 피해자 보상을 하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데 거액을 쓰겠다는 게 삼성의 입장이다. 대법원은 올 1월 “인과관계가 명확지 않다 해서 피해자들의 발병원인이 생산공정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며 일부 피해자들의 업무상 질병 관계를 최종적으로 인정한 상태다.
삼성이 피해자들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에 나선 것도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 들어서다.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직후였다. 사과하는 일은 당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그룹 총수 일가는 아직 반올림과 관련해 적접적인 사과를 한 사실이 없다. 반도체 백혈병 피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삼성의 공식 홈페이지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조정위에서 최종 중재안이 나올 때까지는 별다른 입장을 표명할 게 없다”고 밝혔다.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전자산업계의 직업병 문제를 사회에 각인시키고 직업병 인정 문턱도 크게 낮춘 것이 반올림 활동의 최대 성과”라며 “옴부즈만 제도 등 반도체 직업병 관련 예방, 사후 관리·감독 활동 등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32&aid=0002885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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